이반투르게네프 [연기]
독일 바덴을 배경으로 19세기 러시아 정치와 사회를 투영한 소설이다. 당시 독일에서 활동하던 러시아의 대표적인 두 그룹, 즉 농민사회주의를 표방한 진보적인 구바료프 진영과 농노해방을 비롯해 러시아의 모든 것을 농노해방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동적인 라트미로프 진영을 중심으로 한다. 그러나 공허한 토론과 논쟁만이 난무하고 특별한 이념적 지향점이 없는 구바료프 진영과 귀족정치 시대 때와 같이 사교계의 위선과 탐욕을 누리려는 리트비노프 진영은 이 소설에서 희화되고 풍자된다.
두 진영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서구주의자 포투긴과 유럽식 교육을 받은 평범한 지식인이자 건실한 지주인 리트비노프는, 서구주의자이자 점진적 개혁주의자였던 투르게네프의 사회/정치적 입장을 어느정도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구바료프 진영의 공론을 비판하는 포루킨의 장광설 역시 공허하고 리트비노프 역시 분명한 정치적 신념과 러시아 개혁에 대한 전망을 보여주지 못하고 염세주의와 회의주의에 빠져있다.
"연기다, 연기"
마치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하는 것 같고 도처에 새로운 형상들이 나타나고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지만 본질적으로 모든 것이 똑같다. 라고 표현하며 마무리 된다.
한반도에 대한 여러 의견이 있고 정치적으로 여러 진영들이 있다. 크게는 보수이냐 진보이냐로 나뉘겠지만. 어떤 상황이 일어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고 정치를 이해하려고 하면서도 내 안에서 정치적 신념과 개혁에 대한 길을 만들어가지 않으면, 공허함과 회의감만 남아질 것이다. ’전망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는 내가 답을 제시하겠다는 것과는 다르다. 나는 신이 아니다. 크게 양보해서 설령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답이라 해도, 그 답을 현실화시키는 것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포인트는 과거와 현재 상황을 공부하고 이해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한반도 전체가 다양한 인종, 문화와 언어를 가진 코리안들로 복작복작한 코리아가 되기를 꿈꾼다. (당연한 얘기지만, 혹시나 하여 굳이 언급하자면, 코리안 ‘만’으로 제한 두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지금 오늘이라도 해나가고 있는 것은 한국/러시아/중국/일본 등의 역사,문화,언어와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언어를 배우고, 직접 생활하고 책과 영화를 보며 문화를 느끼기도 하고 역사를 공부한다. 한국에 돌아와 당장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그 작업이 중단되었지만, 조금씩 자리잡고 있기에 여기에 다시 에너지를 쏟을 수 있어 기쁘다. 단순한 이상주의자가 아닌 우선적으로 내 삶을 책임지고 살아나가는 현실적인 능력을 가져야 스스로에 대한 신뢰와 앞서 말한 개혁도 이루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