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는 한 주 였다. >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은 언제나 불안함이 있었고, 사람에게 끌려다니는 느낌이 있었다. 불같이 열정적이고 일시적인 사랑이였다.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은 내 모습을 잃어버리고 내 스스로를 가려지게 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은, 생각보다 잔잔했다. 아니 처음에는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에 비하면, 냉정해보이고 차가워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니, 내 감정은 안정적이였고 내 모습은 진실했다. 처음 느끼기엔 ‘무관심’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내 관점으로 보면 ‘무책임’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무관심/무책임과는 전혀 다르다.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은 그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앞에서 보여주고 표현하기 바쁘다면,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기 시작한 지금은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거리를 조금 두어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한다. ‘내 사람이여야만 해’ 라는 감정/욕심도 사라졌다. 조바심과 긴장도 사라졌다. 사람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사람을 믿지 않는다는 말과는 다르다. 사람을 원래 믿지 않는 나로서, 오히려 사람들을 믿을 수 없다는 고정된 마음에서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사람들은 믿을 수 있는 존재’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사람을 믿고 안 믿고 의 관점을 벗어나, 그것에 제한받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관계에 대한 여유도 생겼고, 하나님께 더 의지하게 되었다. 하나님과 더 가까워졌다.
이번주 많이 외로웠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기를 갈구했다. 그런데 성경에 이렇게 나와있었다.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15:14).” 예수님이랑 친구가 되려면 서로 사랑을 해야했다. 예수와 단둘의 시간으로 내가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피하려고 했을 때, 그게 지금 나에게 답이 아님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기 시작하니, 혼자여서 느껴지는 외로움이 사라졌다. 혼자여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내 마음으로 했던 사랑을 하나씩 떼어놓는 시간을 가졌다. 그 빈 공간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채우는 시간도 가졌다. (아프기도 했지만 평안했고 행복했다.)
요한복음 시작하기 전부터 요한복음을 너무 기대했었다. 그리고 13-17장이 중점이라는 것에 묘하게 위로를 받았다. 13-17장은 계속적으로 ‘서로 사랑’에 대한 반복과 강조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3년 전 나에게 말했던 것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시는 것 같다.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고 계신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 같이 사랑하는 법을 실제로 알려주고 계신다. 사실 이번주에 사랑에 대해 내가 하나님께 연단을 받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아직도 사랑에 대해서 묵상을 해야하는 구나’였다. 참 바보같은 생각이다. 내 평생 끝날까지 사랑은 계속 배워야 하는 주제인 것 같다. 사랑에 대해서 ‘이만큼이면 충분하다’ 라고 느낄 수 있는 때가 있을까. 아니 없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예수님을 통해 새 계명으로 주어진 ‘사랑’은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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